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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고도 먼 나라의 정부회계 일면 관찰기
저자 :
김완희
발간일 :
2015-12-31
  가깝고도 먼 나라의 정부회계 일면 관찰기

  ‘가깝고도 먼 나라’ 하면 단박에 일본을 떠올릴 정도로 일본과 우리는 공간적 거리에 비하여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다방면에 걸쳐서 상이함이 많은 관계라고들 한다. 지난 10월 22일부터 사흘간 연구과제 현장조사 및 학회 발표를 위하여 일본을 방문하였는데 정부회계 분야에서도 역시 ‘가깝고도 먼’이라는 수식어가 적절함을 경험하였다.

  첫째 날은 원내 원종학 박사의 주선으로 퇴임한 원로 회계사 한 분, 경제저널리스트 한 분과 만찬을 겸해서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당초에는 우리의 연구주제와 관련하여 일본의 중앙과 지방회계의 관계 등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이 목적이었으나 상당 부분의 시간을 일본 측의 질문에 대한 답변에 소요하였다. 한국이 단기간에 발생주의 방식을 정부회계분야에 적용할 수 있었던 동기와 동인은 무엇인가가 주요한 질문이었다. IMF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의 재정개혁 필요성, 서구 나라들의 발생주의 도입 경험, IT 시스템의 지원, 중앙과 지방의 제도 도입 경쟁, 민간부문의 국제회계기준 전면 도입 등 그동안 문헌과 개인적 경험을 통해서 생각해 왔던 다양한 개연성들을 제시하였다. 연구주제와는 다소 거리가 멀었지만 약간은 감정(?)을 섞어서 그렇다면 일본은 상당 기간의 준비과정에도 불구하고 중앙정부의 발생주의 도입 및 활용이 지지부진한 이유는 무엇인가를 따지듯이 물었다. 대답은 매우 간단했다. 공직자들이 기존의 현금주의 예산회계에서 변화할 이유를 느끼지 않기 때문이라고.

  이튿날은 일본공인회계사회를 방문하여 公會計(일본은 정부회계를 公會計로 명명함)를 다년간 연구한 회계사 3인과 인터뷰를 하였다. 우리의 현장조사 목적을 설명하고 일본의 중앙과 지방 회계의 이원화 여부, 이유, 중앙과 지방의 협력 기제 등 관심 영역에 대한 질문을 하였다. 지방자치단체는 자발적으로 발생주의 회계를 적용하고 있으며 특히 공유자산 회계처리와 관련해서 발생주의의 도입이 촉발되었다는 점, 각 지자체별로 자율적으로 시행하다보니 지자체 간 비교가능성이 저하되어 몇 년 전에는 총무성에서 표준지침을 제정하였다는 점 등을 설명하였다. 그러나 중앙정부의 경우에는 발생주의 도입을 내부적으로 검토하고는 있으나 본격적인 적용의 필요성은 느끼지 않는 것 같으며 그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재정당국의 의지가 약한 것을 들었다. 특히 사회보장성 연금의 경우 일본은 이미 완전부과식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매월 연금수급자에 대한 연금지급에 전혀 문제가 발생하지 않고 있으므로 연금충당부채를 공식적으로 측정하고 공시할 이유는 느끼지 않는다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도 청취하였다.

  3시간여에 걸친 장시간의 인터뷰 말미에 2013년에 발간한 연구보고서를 제공하여 주었는데 우리 연구진이 몇 달 동안 작업에 매달렸던 주제를 다룬 것이어서 가뭄에 단비를 맞는 듯하였다. 미국, 영국, 프랑스, 호주, 한국 등 세계 8개국의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회계기준 설정 거버넌스를 현장조사한 보고서였다. 국가별로 중앙과 지방의 회계기준 및 설정주체 일원화 여부 및 그 이유, 일본에 적합한 모델 등 우리가 현재 고민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 6개월간 철저한 현장조사를 한 보고서였다. 엄청난 시간과 예산이 투입된 작품을 대가 없이 얻게 되어 고마움에 앞서 미안함이 느껴졌다. 민간기구인 공인회계사회에서 정부회계기준 설정과 관련한 심층연구를 진행한 것은 의외였지만 일본의 상황에 맞는 정책적 제안까지 담고 있어서 매우 유용하게 활용 가능한 보고서였다. 연구의 결론은 일본의 경우 정부회계분야의 전문성을 지닌 인력이 충분치 않으므로 우수한 회계기준을 제정하기 위해서는 중앙과 지방으로 제정기구를 이원화하기보다는 하나의 기구로 역량을 모으는 것이 현실적 대안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유사한 상황에서 상당한 시사점을 주는 주장이라고 동감을 표명하였다.
  그런데 인터뷰가 끝날 무렵 한국의 어떻게 발생주의 정부회계를 조기에 도입하고 정착할 수 있었는가라는 어제와 동일한 질문을 받게 되었다. 어제와 비슷한 취지로 답변을 하여주었다.

  셋째 날은 와세다대학에서 한국과 일본 양국의 정부회계학회가 공동으로 학술심포지엄을 진행하였다. 양국의 중앙 및 지방자치단체의 회계정보 활용 성과를 중심으로 4편의 논문이 발표되었다. 우리나라는 발생주의 도입으로 인한 자산, 부채의 정확한 평가 그리고 연금충당부채 등의 인식에서부터 이어진 연금개혁 등을 중심으로 발표하였고, 일본의 경우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사업원가 활용사례가 인상적이었다.

  발표를 모두 마치고 종합토론 시간에 일본 측 학자들의 첫 번째 질문은 지난 이틀 동안 귀가 따갑게 들었던 동일한 내용이었다. 도대체 한국의 발생주의 회계도입 동인은 무엇인가? 사실 같은 질문을 계속 받으면서 썩 기분이 유쾌하지는 않았다. 자신들은 수년간 차근차근 준비하여서 한걸음씩 가고 있는데 한국은 철저한 준비 없이 해외사례를 신속히 답습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약간의 비꼼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어서 한국은 정부회계제도를 도입하면서 어느 나라의 사례를 주로 벤치마크하였는지, 그렇다면 어느 정도 일치하는지 등 구체적인 질문이 이어졌다. 우리는 미국의 FASAB과 국제회계사연맹의 IPSAS를 우리 사정에 맞게 변형하여 적용하고 있다고 답변을 하니, 일본은 기본적으로 IPSAS를 적극적으로는 수용하지 않는 방향이라는 의외의 답변을 하였다. IPSAS를 제정하는 기구인 IPSASB의 정식 위원으로 다년간 참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자기 나라에서 적용할 생각은 크지 않다는 것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일본 정부회계학회 회장이 일본과 한국은 참으로 가깝지만 정부회계분야에 있어서 다른 부분도 상당하다는 것을 새삼 발견하였다는 취지의 마무리 발언을 하였다. 한국은 자산과 부채 인식에 중점으로 두고 있고 일본은 원가산정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한국은 재정지속성에 대하여 민감하게 반응한 반면 일본의 관료들은 적어도 회계제도상으로는 적극성이 떨어진다는 요약을 하였다.

  귀국길에 일본학자들과 회계사들이 우리에게 사흘 내내 동일한 질문을 한 이유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일전에 현재 IASB 한국 대표로 활약하고 있는 국민대 서정우 교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일본학자 및 회계사들이 IASB 회의에서 회계인식의 기본사고로 수익-비용대응 접근법이 자산-부채 접근법보다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을 보고 왜 당신들은 다른 사람들이 주목하지도 않는, 이미 오래된 논쟁거리를 계속하는가라고 질문을 하였다고 한다. 일본인은 낙수물이 천년만년 떨어져서 바위를 뚫는 방식으로 일하는 것이 체화되어 있다. 회계도 마찬가지로 지속적으로 동일한 문제제기를 하면 언젠가는 반드시 원하는 결과를 얻을 것이라는 각오로 일한다라고 답변하였다고 한다. 우리 팀에 동일한 질문을 한 사람이 반복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일본인의 집요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우리는 외부 환경변화에 신속히 반응하는 것을 경쟁력으로 알고 있으며 사전에 전체 계획이 완벽히 완성되지 않더라도 실행해 가면서 수정을 하는 방식으로 일을 진행한다. 일본은 실행과정에서의 오류를 수치로 생각하기 때문에 사전에 완벽한 준비를 마치고 난 이후 실행을 하면 전면적인 변화보다는 이른바 지속적 개선을 추구한다. 정부회계의 발전과정에서도 이러한 양국의 특성이 고스란히 드러남을 이번 출장을 통해서 체득하게 되었다.

  다르다는 것은 우열을 가르기보다는 상호보완 및 학습이 가능한 상황을 의미한다. 과거에는 일본에서 정제된 제도들을 빨리 답습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발전 전략이었다면 지금은 대부분의 영역에서 일본에 앞서서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고 실행하는 것이 우리의 특징이다. 과정상의 시행착오도 있을 수 있지만 단기간에 다양한 시도와 경험을 얻을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우리나라는 일본의 정교하고 장기간 축적된 자료와 계획을, 일본은 우리의 추진력과 실천 경험을 교환하는 것은 양국 정부회계의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끝으로 전공분야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틀간 일본학자들과의 인터뷰 통역을 위해 헌신해 주신 원내 원종학 박사님께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김완희 국가회계재정통계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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